목회칼럼 김범수 목사 워싱턴동산교회(MD) 오디세이와 모세 고대에 쓰인 호머의 오디세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동안 회자되어온 전쟁과 사랑의 서사시이다. 오디세이는 단순한 시와 글 이상으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각자마다 가지고 있는 인생의 서사시이다. 전쟁과 평화, 사랑과 미움, 욕망과 실패, 신뢰와 배반 등 여러 가지 인생의 우여곡절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기에 오디세이는 한 서사시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주인공, 곧 내가 오디세이인 것이다. 오디세이가 그리이스의 신화적 배경속에서 쓰여진 글 가운데 주인공이라면 이와 비슷한 인물이 성경 구약에서 나오는 모세는 실제 생존했던 인물이다. 모세가 기원전 1200년전에 실제인물이라면 오디세이는 기원전 700년전에 나타난 인물이라고 할 때 어쩌면 오디세이는 모세의 인물을 통해서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추상적인 논리를 말할 수 있지만 그 근거가 없어 허공에 대고 하는 말이라고 넘어가야 한다.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군대가 터어키의 트로이를 함락시키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사건속에서 등장한다. 오디세이는 트로이의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성으로 들어가 드디어 트로이를 함락시킨다. 오디세이라는 인물은 전쟁의 영웅으로 등장한다. 모세도 어쩌면 애급의 왕 바로앞에서 서서 히브리 민족의 대표지도자가 되어 히브리 민족을 해방시켜 달라고 하는 데서부터 모세라는 인물이 부각된다. 결국 애급의 바로왕은 모세가 하나님의 힘을 통해서 애급에게 내린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히브리민족을 해방시킨다. 히브리민족이 홍해를 건널 때 애급군대를 바다에 빠뜨리는 장면을 보면 오디세이에서 나오는 바다에서의 전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전쟁의 시작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오디세이의 전쟁과 모세의 전쟁은 그 시작이 다르다. 트로이전쟁은 인간적인 갈등과 대립애서 생긴 피의 전쟁이지만, 애급과의 전쟁은 애급왕의 강퍅한 마음 때문에 생긴 자충수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오디세이는 트로이전쟁을 위해 10년, 그리고 고향 아카타로 오는데 10년, 전체로 전쟁만을 위해 20년을 밖에서 보냈다. 그 이유는 제우스 신을 가볍게 여기고, 트로이 전쟁을 오디세이의 힘으로만 이겼다고 자만했기에 그리스 신화의 최고의 신 제우스의 마음을 화나게 해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통해서 바다에 폭풍을 일게 했고, 10년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당하게 했다. 결국 오디세이는 자기욕망과 교만으로 1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모세도 나이 40이 되었을 때 히브리 동족을 학대하는 애급의 관리를 죽여 살인죄로 쫓겨서 미디안 광야에 숨어서 40년을 지냈다. 40년 후 다시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서 히브리 민족을 애급에서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라는 명령을 받고 나서 광야에서 백성들과 40년을 보냈다. 그 40년은 오디세이처럼 자기욕심과 교만으로 보낸 세월이 아니라 히브리민족과 함께 한 40년이었다. 그 40년은 모세에게는 겸손과 인내와 믿음의 훈련의 기간이었다. 오디세이가 바다생활 10년만에 아카타에 들어가서 행복하게 아카타의 왕으로 살게 되었지만 모세는 바로 눈 앞에 그렇게 원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고 말았다.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된다. 모세는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 인생인 것이다. 오디세이처럼 자기의 소원을 이루는 것도 인생의 부분일 수 있지만 사실 우리가 살면서 다 이루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연약함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조물주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그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혹시 영웅이든지, 소자이든지 삶은 완전하지 않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전부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영웅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