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김범수 목사 워싱턴동산교회(MD) 왕사남(왕과 사는 남자)과 신사남(신과 사는 남자)
요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관객 수가 천 오백만을 넘었다고 한다. 세조, 곧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단종을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유배를 시키고, 4개월 동안 그 마을에 머무는 동안 그 마을의 주민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아주 평범하지만 비범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가져야 할 사랑, 나라에 대한 충성, 그리고 임금에 대한 존경과 복종, 고통 속에서도 발굴해내는 유머와 재치를 배우게 된다. 특히 왕사남, 강원도 촌구석의 촌장에 불과했던 엄흥도는 끝까지 왕의 삶과 죽음을 함께 했던 모습이 관객들의 공감대를 끄집어내며, 끝내는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샘이 솟아나면서 코까지 뜨거워지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나라가 무엇이며, 국민이 무엇이며, 사람과 사람됨이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별 볼 일 없던 강원도 촌장을 1,200년이 지난 후에 와서야 나라를 구한 충신만큼이나 영웅으로 만들고 말았다. 엄흥도라는 사람이 폐위된 힘없는 왕, 지금은 죄인으로서 유배 생활을 하는 단종에게 보여준 것은 오직 진실, 마음, 자기가 소유하고 있었던 땅보다 더 큰 대지의 너그러움에서 나오는 동정이었을 것이다. 그 동정은 우리 모든 사람이 살면서 늘 품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잠언21:21)” 왕과 사는 남자의 그 남자는 남자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자기의 도리를 다한 사람이다. 우리는 가정, 사회, 단체, 그리고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런 남자, 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은 더욱더 그리해야 한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 곧 신, 하나님과 사는 남자, 여자들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구별되게 사는 것이다. 빨간색과 하얀색이 다르듯이 분명히 달라야 한다. 성경은 그렇게 다르게 사는 삶의 모습을 “소금과 빛”처럼 사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소금은 생선처럼 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금으로 절이듯이,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사는 것이 신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신사남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신사남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 A.J. 크로닌이 쓴 ‘천국의 열쇠’에서 주인공 신부 프란시스 치섬 신부는 중국의 선교사로 가서 사람들로부터의 조롱, 핍박, 고난, 재난, 질병을 당하면서도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과 헌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으로부터의 명예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칭찬을 더 귀한 것으로 알았다. 그가 비록 세상의 명예와 권력에 젖어있는 동료 신부들로부터는 외면을 당해도 그를 아는 신도들로부터는 하나님의 사람, ‘신사남’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는 세상의 빛이었고, 소금이었다. 왕사남의 엄흥도가 훗날에 칭찬을 받는 것처럼, 신사남, 프란시스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은 것처럼, 우리도 왕사남, 신사남처럼 이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