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김범수 목사 워싱턴동산교회(MD) 헤어질 결심 다시 만날 결말 인생은 만나는 것으로 시작하고, 만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그 만남과 또 만남의 과정중에서는 헤어짐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을 졸업하면서 친구들과 헤어지고, 중학교 3년을 졸업하고 헤어지고,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헤어지게 된다. 그 헤어짐의 과정 속에서 많은 만남들이 잊어지게 되고, 끊어지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어느 골목이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그 오래 전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될 때 그 만남은 때로는 기억못하기도 하고, 또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 다시 만남은 감격스럽고, 그 때와 다른 모습에 약간은 당황하지만 잠시 몇 분 뒤에는 다시 그 때 그 옛날의 그 모습이 되어 말도 자연스럽게, 행동도 편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헤어짐은 순간은 아쉽지만 그러나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아련한 희망이 있기에 그렇게 슬픈 것은 아니다. 이곳 저곳에서 사랑하던 사람들이 갑작스런 죽음을 당해서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준비하지 못했던 죽음의 이별을 당하는 그 순간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곧 돌아 오리라 기다렸는데, 아무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잘 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돌아오는 것은 주검뿐일 때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세상은 정말 야속하고 잔인한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는 웃음이 가득하고 춤과 노래가 있는 파티같은 삶을 사는 것 같은데 어느 누구는 늘 비맞고, 바람불고, 배고프고 추워서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조물주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이 지켜야 하는 규율을 어긴 형벌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이 세상에 왔지만 언제나 이 세상을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헤어질 결심’인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조차 헤어질 결심을 배워야 한다. 무슨 엉뚱한 말같지만 어릴수록 헤어지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 어린아이들이다. 어린아이들은 제일 먼저 아빠 엄마를 보기 때문에 그들의 세상은 전부 엄마아빠 뿐이다. 그들이 없으면 아이는 운다. 유치원에 데려다 놓고 헤어질 때 아이는 헤어지기 싫어서 운다. 그러나 우는 것도 잠시, 우는 이유도 망각한채 몇시간만 지나면 다시 어머니를 볼 때 그 때 아이는 다시 반갑고 행복한 웃음을 되찾게 된다.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비록 떠나고, 헤어지고, 갈라지고, 나뉘어지는 일들이 있었지만 다시 돌아오고, 만나고, 결합하고, 연합하고, 통일되는 일들이 있기에 인생은 묘미가 있고, 신비로운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도 바로 이런 헤어짐과 만남의 인생을 대별하는 속담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사는 이민자는 더욱 더 헤어짐의 결심을 과감하게 한 사람들이다. 고국을 떠나 미국에 와서 살아야 하는 결심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항에서 걱정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출국할 때 떠나고, 떠나보내는 심정들이야 오죽했으랴? 그 길고 긴 이별의 시간들을 마치고, 미국의 생활에 안정을 찾고 고국으로 가는 그 첫비행기에 올라가 좌석에 앉아 있는 시간이야말로 행복한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싸우고, 멀리하고, 등을 돌리며 차가운 헤어짐의 결심들이 언젠가는 따뜻한 포옹으로 맞이할 때가 올 것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고, 헤어진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될 그 희망이 오늘을 더욱 더 힘차게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범사가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3:1-2) 인생은 떠나고 헤어지는 결심을 할 때 가벼워 진다. 그러나 그 가벼워짐은 탈피가 아니라 다시 만나게 될 결론을 미리 알고 있는 현명한 사람의 결정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 또 만났네 또 만났네!“ 노래를 부를 날을 소망해야 하는 것이다. |